[공지사항] - 항상 정상에 있습니다.

1. 이 곳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 아니, 막 적어대는 곳이니 얻고자 하는 지식을 얻을 수 없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2. 제가 정리한 지식이 틀렸다고 생각 되시는 분들은 '그럼 그렇지.' 생각하시고 전문가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3. 안부나 기타 저에게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적고 싶은 곳에 적으면 됩니다.

4. 뭐, 역시 더는 쓸 공지가 없다는 게 네 번째 공지입니다.

이번엔 실수로 공지가 지워지지 않도록 더 조심스러운 제가 될 것을 이 공지를 통해 맹세합니다.

공지 추가 (2011년 10월 6일 ).

5. 제 미투데이 계정은 http://me2day.net/n/angelamuro  입니다. 다시 시작한 이글루의 글은 미투데이와 연계합니다.

by 루시퍼엘 | 2012/07/28 12:00 | 트랙백 | 덧글(28)
2012년 1월 28일 pm 11:00
주머니에 백 원이 있습니다. 자판기커피는 삼백 원이죠. 공교롭게도 천 원짜리 지폐도 없습니다. 편의점에 가서 만 원짜리를 거슬러 오자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의 이백 원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공원 자판기 앞에서 썼던 글이다. 이렇게 폰으로 포스팅하는 건 생각이 정리 되지 않아 싫지만 오랫동안 포스팅을 못해서 이렇게 포스팅한다.
나는 여전히 달콤한 자판기커피가 마시고 싶지만 내 주머니 속엔 오늘도 이백 원이 없다.
by 루시퍼엘 | 2012/01/28 23:00 | ♧ 낙서장 ♧ | 트랙백 | 덧글(0)
[구인] 그냥 있는 것들, 유쾌한 사람 우대.
[구인] 그냥 있는 것들, 유쾌한 사람 우대.


시끄럽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고 떠드는지. 저들이 웃고 떠드는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저들의 웃음소리로 인하여 이 자리에 그냥 있기가 매우 불편해졌다는 것뿐이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다.

저들의 구성원은 대학 신입생처럼 보이는 젖 살 퉁퉁한 여학생 셋과 예비역쯤으로 보이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릴지도 모른다.- 남학생 셋이다. 촌스럽게 미팅이라도 하는 양, 아주 저들끼리 신이 났다. 구체적인 저들의 묘사는 생략하기로 하자. 여름이 아니라면 굳이 패션잡지 따위는 보지 않는 나니까. 어쨌거나 이 가게에서 저들이 앉은 테이블 만이 일종의 변화가 있다. 다른 테이블들은 그러니까, 음, 그냥 있다. 이점에 있어 가게 주인으로서 나의 심정은 참담할 뿐이다. 여섯 명 중에서 유독 한 여학생이 내 눈길을 잡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혼자 일어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는 그녀가 방금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 테이블에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그녀가 줄곧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일어서며 균형을 잃게 되었고 결국 테이블보가 포근히 덮여 있는 옆 테이블을 손으로 짚고 말았다. 사건의 모든 과정을 나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행들까지 모두 목격하였지만 누구 하나 사건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짚었던 테이블보에서 손을 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위를 빠르게 휘돌아 봤다. 순간 목격자인 나와 그녀의 일행들은 그녀의 시선이 다가오자 깜짝 놀라 어색하게 딴청을 피웠다. 그녀는 그런 세세한 행동들을 확인한 뒤에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테이블보를 내려 보았다. 아무 죄도 없는 테이블보에 그녀의 손자국이 아로 새겨졌지만 -이렇게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목격자가 즐비한 범행현장을 대범하게 정면 돌파로 빠져나가 버렸다. 너무도 대범한 가해자의 행동에 당황한 나와 그녀의 일행들은 사건에 대해 더는 어떠한 말과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이 사건은 은폐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가해자가 사라진 범행현장에 피해자인 테이블보는 그녀의 손자국을 간직한 채, 그냥 있다.

나는 가게에서 1번 테이블이라 불리는 테이블 옆 창에 어깨를 기대고 비스듬한 시선을 창밖으로 풀어 주었다. 1층의 카페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2,3층을 권하던 건물주의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1층을 고집했던 이유는 돌이켜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푸치노 정도를 어설프게 들어본 얄팍한 커피 지식으로 카페를 차린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다 할 경험도, 지식도, 열정도, 패기도, 그 어떤 것도 없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탁자와 의자만 놓으면 가능한 카페 외에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당시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 들 수 있는 곳, 쉽게 말해서 그냥 있을 곳이 필요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여름, 금실 좋은 우리 부모님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여행 가방을 꾸렸다. 비가 잡 내를 쓸어 간 뒤라야 비로소 본연의 산내음을 맡을 수 있다 시며 급하게 떠난 부모님은 지반이 약해진 산을 두 손 꼭 잡고 오르시다가 뜻하지 않은 산사태를 만나 산내음과 함께 매몰되고 말았다. 총 11명의 사망자와 3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어지러운 산사태 현장에서도 부모님은 어찌나 금실이 좋았던지, 두 손 꼭 잡고 저승길을 함께 걸어가셨다. 다음날 두 분의 꼭 잡은 두 손은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뿐 아니라 신문에 기사가 나간 당일 저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이라는 어느 포털 사이트의 설문조사에서도 당당히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설문조사를 왜 하필이면 그날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순 없지만 2위가 로미오와 줄리엣, 3위가 성춘향과 이몽룡이었으니 그야말로 신뢰성 제로에 가까운 날조된 설문조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름다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의 죽음에도 호불호의 등급이 존재한다면 우리 부모님처럼 두 손을 꼭 잡고 한 손에는 주말특약과 나머지 한 손에는 천재지변특약-이런 특약이 보험사기 이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을 잡는 것이 단연 최상의 등급일 것이다. 물론 피보험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 귀찮게 하는 기자들과 상주의 감정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플래시를 터뜨리는 몰지각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잠시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찾은 것이 1번 테이블 옆 창가인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다.

사장아, 정보지에 알바 광고 뭐라고 내? 무슨 알바? 관심이 있니, 없니? 알바 그만뒀잖아. 그런 건 그냥 알아서 해. 사장의 무관심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거 좋겠다. 유쾌한 사람 우대. 역시 정양 없이는 가게가 돌아가질 않는다. 가게의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정보지에 지배인 구인광고를 냈다. 물론 '경험자 우대'라는 문구와 함께 '가족처럼 일하실 분'이라는 문구도 빼놓지 않았다. 광고가 나가자 수많은 문의 전화가 걸려 왔고 몇몇 사람들과는 가게에서 면접을 보기로 약속했다. 그 중에 정양이 있었다. 면접 보기로 약속한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정양은 170Cm쯤 되고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성실성 높은 바디에, 성형외과 After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이목구비가 정연하게 들어박혀 신뢰성을 한층 높여 주는 마스크의 소유자였다. 구인광고 문구에도 넣었듯이 가족처럼, 나아가 가족이 되고 싶은 구직자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별 다방에서 배달 포함 무려 5년의 경력까지 갖춘 숨은 실력자였다. 나는 더 이상의 면접은 무의미함을 깨닫고 망설임 없이 정양을 채용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밝혀 두자면 정양의 이름은 본명이다. 외자를 사용하는 가풍에 따라 넷째인 정양의 이름이 양인 것이다. 입에 붙고 외모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나, 이곳은 카페였으므로 직장의 윤리관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름이었다. 어쨌거나 정양이 있음으로 인하여 나의 그냥 있음 또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유쾌한 사람은 개뿔, 사장이 너나 많이 유쾌해져라. 엉덩이 만지지마. 그나저나 재들은 되게 떠드네. 정양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내 엉덩이를 자신의 엉덩이인 양 주물럭거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불행한 점이 있다면 정양의 그런 한가지뿐인 흠을 내가 가장 좋아한다는 것이다. 젠장.

빗방울이 떨어진다. 창밖의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오늘처럼 예보에 없던 소나기는 정양이 그려 놓은 매상 그래프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덩달아 올려놓는다. 사람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혹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도 지금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웃음소리가 귓불을 간질인다. 순간 생각을 접고 고개를 가게 안으로 돌렸다.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얼굴까지 잔뜩 일그러뜨리며 웃고 있다. 저들의 얼굴은 언제부터 저렇게 일그러져 있었지? 가게 문을 열 때도 지금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을까?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밖의 사람들이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에 무미건조한 표정의 내가 잔상처럼 비친다. 나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려 본다. 창에 비친 나는, 그냥 있다.

딸랑, 딸랑. 어서 오세요. 정양은 누구보다도 -가게의 근무자는 정양과 나뿐이니 이 누구는 나일지도 모른다.- 밝게 인사한다. 어깨에 맺힌 빗방울을 털어내며 들어온 여성이 창가 쪽 구석 자리인 4번 테이블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나와 마주보는 형태가 되어 계면쩍게 카운터로 돌아왔다. 주문받은 녹차를 손님 앞에 내려놓은 정양이 살똥맞은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며 다가온다. 이럴 때 정양은 숨이 막힐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나는 경험상 좀 무섭다. 알바가 계속 그만두는 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야, 알아? 나 사장이야. 장사가 안 되는 데는 사장이 한 몫 단단히 한다고. 특히 가게 분위기와도 안 맞는 저 늘어진 다크서클 같은 테이블보를 고집한다는 점. 구겨진 테이블보를 치우면 그렇게 불편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니까. 그리고 비 오는 날은 다 젖는단 말이야. 괜찮아.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해. 개냐? 영역 표시하게. 아무튼 테이블보만은 절대 양보 못해. 정양은 아무 말 없이 잠시 동안 내 눈을 노려보다가 뿌루퉁하게 시선을 옮겼다. 테이블보는 포근하다. 테이블보가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정양은 그런 포근함을 모른다. 정양에게 테이블보는 단지 늘어진 다크서클 같은 것이다. 이것이 정양과 나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차이에도 아랑곳없이 테이블보는 늘어진 다크서클처럼 포근히, 그냥 있다.

빗방울의 수만큼은 아니겠지만 비가 자꾸만 손님을 부른다. 놀란 자라처럼 목을 어깨 속에 깊게 집어넣은 여성이 비에 젖어 늘어진 긴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털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커트 머리를 한 여성이 자신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리며 따랐다. 앞선 여성이 중앙의 시끄러운 학생들을 힐끔거리며 지나쳐 안쪽 구석진 6번 테이블로 가 앉자, 뒤선 여성이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손 빗질하며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 뒤를 정양이 물 두 잔과 두 장의 수건-정양에게 찻잔 닦는 걸레의 쓰임은 무궁무진 했다.-을 들고 따랐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주문을 받고 카운터로 돌아온 정양이 혼자 찻잔을 준비하고 커피를 만드느라 손발을 재게 놀렸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정양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찻잔에 담겨지는 커피의 이름을 모른다. 이점에 있어 가게의 주인으로서 나의 심정은 참담할 뿐이다.

시선을 4번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4번 테이블의 여성은 책을 읽는 중이다. 나는 다시 1번 테이블 옆 창가로 갔다. 창밖의 빗방울이 많이 야위었다. 처음부터 오래 내릴 비가 아니었다. 중앙에 있는 시끄러운 학생들이 자리를 파하려는지 순차적으로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고, 그중 먼저 일어선 남학생이 카운터로 가 정양에게 계산서와 함께 카드를 내밀었다. 정양이 계산을 도와주는 동안 나는 쟁반을 들고 조용히 중앙의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가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다. 테이블을 깔끔히 치우고  다시 1번 테이블 옆 창에 한쪽 어깨를 기댔다. 그사이 비가 완전히 그쳐 있었다. 비가 그친 창밖은 버려진 도시의 정적한 사진처럼 선명하다. 비에 젖어 있지만 수성 펜으로 그려진 세상은 아니었다.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지도 넘어섬을 용납하지도 않는 유성의 그것, 그것이 비가 잡 내를 쓸어 간 뒤라야 비로소 맡을 수 있는 본연의 세상 내음인지도 모르겠다. 가게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용하다. 정양은 카운터에 앉아 무엇인가를 적고 있고, 6번 테이블의 여성들은 각자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정신이 없다. 그리고 4번 테이블의 여성은 책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조용하다.

정양이 손에 든 펜을 탁 내려놓고 달뜬 표정으로 일어서 나에게로 걸어왔다. 혼자 무엇인가 골몰한 뒤에는 언제나 저런 표정이 되곤 한다. 사장아, 드디어 내가 한 건 했다. 무슨? 우산 없어서 비 맞은 손님들에게 반값만 받는 거야. 왜? 뭐, 비 맞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랄까? 나에 대한 배려는 무시하는 거야? 사장이 너는 좀 유쾌해질 필요가 있어. 유쾌한 게 뭔데? 음, 관심 갖는 거? 그건 어디서 나온 논리야? 논리는 개뿔, 대충 그렇다는 거지. 엉덩이 만지지마. 아우, 되게 심심하네. 정양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꺼내 놓는다. 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생각들인데, 예를 들어 벽돌 모양의 스펀지를 출입문 위에 올려 두고 손님을 놀라게 한다던가, '반했어요. 몰래 연락처 좀'이라고 적힌 메뉴판을 내놓고 커플 손님을 당황하게 만드는 식이다. 또 얼마 전에는 물을 붓고 거꾸로 뒤집어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 마술 컵으로 나를 포함해 손님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직도 정양의 비밀상자 안에 든 물건들을 다 확인하지 못했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손님들은 그런 정양의 이벤트를 매우 즐거워한다. '관심 갖는 것은 유쾌하다'는 정양의 대충 그런 논리가 맞을지도 모른다. 정양은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의 논리를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아, 그냥 있는 게 뭘까?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뜬금없긴 가게 상호가 '그냥 있는 것들'인데. 내가 지었어. 멋지지? 이 가게에 그냥 있는 건 사장이 너뿐이잖아. '들'자는 빼자. 왜, 전부 다 그냥 있지. 그냥 있는 것에 대한 사장이의 기준은 뭐야? 니들이 뭘 해도 그냥 있겠다는 거지, 사진속의 배경처럼. 진부하다. 배경도 사진의 일부 아냐? 배경들은 사진의 일부이길 원하지 않아. 사장이 너처럼? 내가 왜? 사장이 너는 꼭 우연히 찍힌 심령사진 같아. 왜, 내가 어때서 이정도면 사람답지. 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사람답다는 말을 만들어 우리 사장이를 괴롭히나이까. 오징어 다리처럼 늘어진 팔, 다리와 황금 땅콩 비율 2등신 몸매! 분무기로 그린 듯 흐리멍덩한 눈! 코! 입! 썩은 동태처럼 초점 잃은 동공! 마지막으로 깊은 물에 내린 닻줄 같은 이 음침함! 이 모든 것들도 사람이라 하소서. 저리 가. 좋다고 고백할 땐 언제고, 웃겨. 적어도 심령사진은 찍는 자가 의도한 배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도되지 않은 배경이 찍히게 되면 찍는 자가 처음에 선택했던 주인공은 배경이 되고 만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유가족들 중 마지막으로 그 곳에 도착했다. 일간지 1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부모님이라는 걸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합동 빈소가 어딘지 확인하고 빈소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흡사 영화 촬영지를 방문한 듯한 느낌이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빈소를 향하였고 카메라가 가리킨 끝에서는 배우처럼 유가족들이 혼신의 눈물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구경꾼들의 수 또한 적지 않아 현장의 질서를 담당하는 사람들까지 눈에 띄었다. 나는 수많은 취재진들 사이로 끼어들어 빈소로의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호원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에게 제지를 당했다.

-지금 이 곳은 아무나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나가 주시죠.

-저는 김영민, 최선화 씨의 아들입니다.

사내는 한 손으로 내 팔을 잡고 빈소 밖으로 이끌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누군가에게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사내에게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빈소 앞 작은 벤치에 앉았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양 손에 자판기 커피를 들고 검은 뿔테 안경을 눌러 쓴 보통 체구의 사내가 다가와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를 힐끗 올려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받았다. 커피는 따뜻하지 않았다.

-김영민, 최선화 씨의 자제분이시라고요.

-그런데요.

-덤덤하시네요. 안 믿기는 건가?

-용건이 뭐예요?

사내는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다.

-몇 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부모님께서 평소에도 사이가 좋으셨나요?

-기잔가요?

-아, 네.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마시고 좀 도와주세요.

도와 달라고? 도움을 청하고 싶은 건 오히려 나였다. 이건 꿈이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말해 달란 말이야.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참고 또 참았다. 사내는 자리를 피하려는 내가 못마땅하다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사내가 못마땅했다.

-그냥 좀 내버려 두세요.

-이봐요. 당신네 부모님은 이미 스타예요. 이 메마른 세상을 촉촉하게 적셔 줄 감동의 러브스토리. 캬, 이대로 그냥 죽이긴 아깝지.

-뭐라고, 이 개자식아!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동네 친구 녀석과 딱지치기를 하다가 딱지가 잘 넘어가지 않게 발로 밟았다는 이유로 싸운 이후 처음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곱씹어보면 그리 나쁜 의도의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당시의 나는 그런 판단을 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 참고 있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나는 이미 이성을 잃었고, 끝내 인정사정없이 기자를 폭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기자의 말처럼 부모님은 이미 스타였고, 이번 산사태의 주인공이었다. 사진 속 부모님의 꼭 잡은 두 손을 본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은 서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저렇게 잡은 손을 놓지 말자고. 메마른 세상을 촉촉하게 적셔 줄 감동의 러브스토리,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기자를 폭행하는 내 사진이 당당히 일간지 1면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심령사진 이었다. 사진 속 나를 본 세상의 수많은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저런 후레자식은 되지 말라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장례기간동안 사람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훗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찍은 사진들의 손가락이 모두 내 눈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다른 유가족들은 장례기간 내내 오열을 했고, 몇몇 사람들은 실신을 하기도 했다. 그런 유가족들과 비교되어 나는 더욱 비난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는 장례식 도중에 소주잔이 날아들기도 했다. 산사태의 원인이 나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마치 내가 부모님을 살해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산사태 현장에 암매장이라도 시도한 것처럼 모든 비난의 중심이 되었다. 비난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눈물을 닦으라며 수건을 건네 줄 -비록 그것이 찻잔을 닦던 걸레일지라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때로 사람들은 너무, 조용하다.

비 얼룩을 제멋대로 새긴 사람들이 물웅덩이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나의 시선을 벗어났다. 나는 창밖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데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정양이 출근을 한지 며칠 만에 '사장님, 실연당했어요? 아니면 그냥 똥 폼 잡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 왔다. 하지만 오늘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에는 바닥의 물웅덩이가 사람들의 표정을 빨아들여 표정을 볼 수가 없다. 표정이 없는 창밖은 마네킹 공장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가게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양은 카운터에 앉아 한 손으로 턱 받침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 펜을 뱅그르르 돌리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저러고 있다가 또 언제 달뜬 표정으로 볼펜을 탁 내려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정양이 있기에 카페 '그냥 있는 것들'이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장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가게에도 나에게도 정양은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4번 테이블의 여성이 내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가 보낸 눈짓은 손님으로서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신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가게에서 손님들과 대화를 한다거나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하루 대부분의 일과이긴 하지만 창-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을 통하지 않고서는 표정을 살피는 일 또한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우연히 시선을 옮기다 마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하루를 통 털어 정양을 제외한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치 않는다. 물론 오늘처럼 가게에서 손님들의 부름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정양에게 도움을 청하여 상황을 모면했다. 나에게 창을 통하지 않고 사람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두렵고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4번 테이블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정양은 펜 끝을 살짝 문 채로 나를 힐끗 올려 보고는 이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4번 테이블로 향했다. 이럴 때 나는 굉장한 무기력감에 빠진다. 정양은 손님의 녹차 리필을 도와준 뒤 옆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려놓았다. 사장아, 광고 진짜 뭐라고 내? 무슨 광고? 바보, 알바 구! 인! 광! 고! 마음대로 내라니까. 생각해 봤는데 유쾌한 사람 우대라고 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거야. 멋지지? 그래 우리 사장이 멋지다. 엉덩이 만지지 말라니까. 애정표현이야, 애정표현. 좋으면서 아닌 척 하기는.

카페를 개업하고 1번 테이블 옆 창가가 생겼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비난에 빠르게 열을 올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관심해지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에 대한 비난이 시들해질 즈음 정부로부터 위로금과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았다. 나는 그 돈으로 카페를 개업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분개하여 나를 다시 도마 위로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도마 위의 나를 향해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시작하였는데, 부모님의 장례식에서조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후레자식이 위로금을 받을 자격이 되느냐는 자격논란부터 보험 가입 시 보통은 빼 버리는 특약들까지 가입한 이유가 혹시 피보험자의 의도적인 계획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는 계획적 보험 사기론까지 난도질의 형태 또한 다양했다. 그뿐 아니라 난도질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끼어들어 불매운동은 물론 위로금과 보험금을 회수하자는 백만 서명운동까지 성행했다. 심지어 한 시민단체는 다년간 산사태가 발생한 위험지역을 방치한 무능력한 정부가 결국 패륜아에게까지 국민의 혈세를 퍼다 주었다는 논평까지 발표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흡사 중세시대의 마녀사냥 그것이었고, 나는 화형대에 묶인 마녀사냥의 재물이었다. 그런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은 사람은 세상의 여론 따위에 관심을 두진 않는 무관심론자들과 정양뿐이었다.

불매운동 때문이었는지 가게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다. 간혹 가게를 찾은 손님들도 내 눈치를 살피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물론 나와 관련된 일 따위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정양을 보기 위하여 가게를 찾는 남자 손님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개업 초기였기에 정양을 보기 위한 손님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의 여성이 가게로 들어섰다. 그들은 안쪽 구석진 6번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여느 날처럼 1번 테이블 옆 창가에 있었는데, 무료하게 창에 기댄 내 뒷모습을 6번 테이블의 한 여성이 휴대폰으로 몰래 찍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정양은 재빠르게 6번 테이블로 뛰어가 휴대폰에 저장한 사진을 지워 줄 것과 가게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사진을 찍은 여성이 콧방귀를 뀌며 정양의 요구를 무시하자, 신경질적으로 변한 정양과 사진을 찍은 여성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사진을 찍은 여성이 마지못해 정양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런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가게를 빠져나간 여성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내 눈 속으로 들어와 휴대폰으로 카페 외관을 몇 장 찍고는 내 눈 속에서 사라졌다. 정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테이블을 정리하고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내 엉덩이를 덥썩 잡았다. 말랑말랑하네. 탱탱하지도 않은 엉덩이를 왜 찍었데.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려 정양을 바라보았지만 너무도 초롱초롱 빛나는 정양의 눈빛에 당황하여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정양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내 엉덩이를 몇 번 더 주무르고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카운터로 돌아갔다. 카운터로 돌아가는 정양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콧바람을 내뱉으며 미소 지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지어보는 미소였다.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을비가 내린 뒤라 공기가 제법 매웠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라이터를 몇 번이나 그어 댄 뒤에야 겨우 연기를 뱉어 낼 수 있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출입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가 몇 번이나 더 연기를 뱉어 냈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는 동안 21명의 다리를 보았다. 나는 담배꽁초를 바닥의 빗물에 끄고 일어나 가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정양이 미간에 주름을 깊게 새기고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지. 바람이 쌀쌀해. 영하 40˚의 추위에서도 어깨 딱 펴고, 짝 다리 짚고, 한 손은 바지주머니에 끼우고, 고개는 45도 하늘을 향한 다음, 폼 나게 빡빡 피우란 말이야. 영화에서도 그 정도로 오버는 안 한다. 사장이는 괜찮아. 다음부터는 폼 나게 알았지? 엉덩이 만지지 말라니까. 요즘은 금연이 대세라는데 정양은 흡연을 권장한다. 단, 조건이 있는데 폼 나게 피우라는 것이다. 폼 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비흡연자인 정양은 모른다. 애초에 잘생겨서 쪼그리고 앉아 엄지와 검지로 꽁초 담배를 잡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연기를 내뱉어도 폼이 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아무리 폼을 잡아 봐도 그저 발암물질을 내뱉는 사회의 악일뿐이다. 폼 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폼 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양이 말한 자세만큼은 앞으로도 쭉 자제할 생각이다.

정양이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카운터에 홀로 앉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두른 듯 카운터의 의자는 편안하지가 않다. 영 어색하여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을 때 6번 테이블의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며 내는 작은 소리들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시끄럽게 고막을 울려 댔다. 휴대폰 요금은 자동이체를 해 두면 편할 것을. 정양이 오면 꼭 자동이체 방법을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트 머리를 한 여성이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와 계산서와 함께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그녀의 곱고 하얀 손을 본 순간 심박 수가 빨라지고 그녀의 손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렸다. 정양이 없는 지금 나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계산서에는 팔천오백 원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금고를 열고 그 안에 만 원짜리 지폐를 집어넣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손등으로 이마를 쓰윽 문질러 닦아냈다. 만원을 받았고 커피 값 팔천오백 원을 제하면 얼마였더라. 당황하여 좀처럼 계산이 되지 않았다. 이마를 닦아 낸 손등 뿐 아니라 손바닥에도 이미 땀이 흥건했다. 천오백 원 주시면 돼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긴 머리의 여성이 날 보며 가볍게 미소 짓고 있었다. 맞죠? 천오백 원. 아, 예. 계산이, 생각보다 어렵네요. 아저씨, 너무 귀여우세요. 나는 금고에서 천오백 원을 꺼내 손님에게 주었다. 안녕히 계세요. 아, 예. 안녕히 가세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여성들이 가게를 빠져나가자 참고 있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쉼 호흡을 크게 여러 번 했지만 심박 수는 여전히 빨랐고 머릿속도 여전히 하얬다. 나는 쟁반을 들고 6번 테이블로 갔다. 테이블보 위에 잔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왠지 따뜻하지 않았다. 내가 귀엽다고? 나는 테이블을 치우고 카운터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턱 받침을 하고 가게 안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처음 개업했을 때보다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테이블보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양이 채워 놓은 것들이다. 제법 분위기 있는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4번 테이블의 여성도 그런 분위기에 잘 녹아들었다. 문득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손님들 갔어? 응. 계산은? 내가 했어. 정양은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지그시 미소 지었다.

두 명의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자들끼리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우리 가게에서 만큼은 하루 매상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일이다. 그들 대부분은 비공식 정양 팬클럽 회원들이다. 그런 팬클럽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가게를 찾는 남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남자라는 것과 정양을 힐끔거리면 쳐다본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비공식 정양 팬클럽이라 명명했다. 두 명의 남자는 여성 손님들이 있었던 안쪽 구석진 6번 테이블로 가 앉았고, 그 뒤를 정양이 물 잔을 들고 따랐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카운터로 돌아온 정양이 바쁘게 커피를 만들었고 그 모습을 6번 테이블의 남자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리고 4번 테이블의 여성은 여전히 책을 읽는 중이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가게 안에서 정양의 말처럼 나만이 그냥 있었다.

정양이 6번 테이블로 커피를 내주고 카운터로 돌아와 옆에 앉았다. 그냥 있는 게 뭘까? 사진의 배경 같은 거라며. 그게 아니라, 아까 가게에서 나만 그냥 있다고 그랬잖아. 사장이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있잖아.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그냥 있는 거야? 글쎄, 관심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지금 들어온 손님들 잔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 마시는 거겠지. 멍청이, 그걸 누가 몰라? 사장이는 잔속에 담긴 내용물을 모른다니까.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 좋아서 일그러뜨리는지 싫어서 일그러뜨리는지 모르는 것처럼? 뭔 헛소리야. 그런 헛소리할 시간에 가게에나 좀 관심 갖으란 말이야. 유쾌해지라는 거네? 자꾸 헛소리할래? 저기 4번 테이블 손님 일어난다.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서 치우기나 하셔. 나는 정양의 재촉에 쟁반을 들었다. 중앙의 테이블을 가로질러 4번 테이블로 가는 도중에 중앙 테이블에서 손자국을 발견했다. 범행현장을 대범하게 정면 돌파로 빠져나갔던 여학생이 남겨 놓은 흔적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자국을 내려 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안 치울 거야? 치울게. 나는 정양의 채근에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자국이 아로 새겨져 구겨진 테이블보를 손으로 쓰윽 밀어 폈다.

by 루시퍼엘 | 2012/01/15 21:46 | ♧ 소설 ♧ | 트랙백 | 덧글(0)
정답은 없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게 맞는 것일까?
누가 감히 맞다, 틀리다, 답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정답일랑 생각도 마라.  비교도 하지 마라. 내 비록 비참한 듯 보여도 그것은 내 인생이다. 다른 답일 뿐 틀린 답이 아니란 말이다.
평가도 하지 마라. 네가 무어길래 평가를 한단 말이냐, 겸손해져라.
자만감에 빠지지 말며, 자괴감에 빠지지 말라.
인생을 섣불리 정의 내리지 마라, 그냥 살아라. 섣부르게 인생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도 전부 엉뚱한 정답 때문이다.
절망하지도 말며, 희망하지도 말라.
그렇게 살자. 정답은 없다.
누가 감히 정답을 이야기한단 말이냐.

by 루시퍼엘 | 2012/01/04 18:25 | ♧ 구분 짓기 힘든 글 ♧ | 트랙백 | 덧글(0)